내 오래된 친구인 바다, 고래섬 그리고 너희들에게.

고래섬의 그 누구도 해보지 못했던 가장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름의 졸업식이 기어코 막을 내렸다.

그날 집으로 가는 길이 왁자지껄 시끄러웠던가, 아니면 조용히 새까만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들을 보며 다음의 만남을 기약했었던가.

이별로 이어지는 길을 천천히 걸어가며 기억을 더듬어보려 했으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모래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소중한 것들이 제 곁에서 하나둘씩 사라지고 난 뒤에도 가슴 한 구석에 있는 아쉬움과 섭섭함을 카츠키 료는 모른 척했다.

머리 위에서 어스름하게 껌뻑거리는 전등에 감겨있던 눈꺼풀을 슬그머니 뜨면… 이미 너희와 함께 했었던 졸업식의 다음 날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분명 아침에 깼던 것 같은데……. 그마저도 기억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침대에 누워 멍을 때리다 기절하듯 잠들었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구태여 침대에 파묻혀있는 몸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기에 제 시선만 두어 번 굴려보다 느지막이 어설프게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 쪽으로 옮기자 열기가 가득했던 태양이 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 주변에서 잔해처럼 남겨진 노을이 틈 사이로 흘러나와 제 눈을 따갑게 찔러댔다.

누워있기만 하니 할 것도 없어 더욱 심심해지는 탓에 작게 혀를 찼고. 결국 몸뚱이를 일으켜 푹신한 침대에서 비척거리며 일어나 보면 제 발에 차이는 느낌과 함께 여기저기 바닥에 널려있는 물건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옷가지라던가 아직 손도 안 댄 과자 뭉텅이들이라던가…….

게다가 최근에 뽑았던 뽑기 상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꽤 골머리를 썩히고 있던 중에 잠들었던 것 같다. 쓸모없는 물건들이었던 건 분명한데,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보니 나름의 추억이 들어있는 것들이라 저답게 한참이나 입을 삐죽 내밀고서 고민하고 있었지. 평소에는 굴리지도 않았을 그 머리로 열심히 해결방안을 떠올려보지만... 떠오르는 건 그다지 없었다. 한심한 눈짓으로 너저분한 제 방을 훑다가 곧 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발로 슥슥 밀어내곤 도통 공부하질 않아 먼지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뽑기 기계 앞에 코 박고 세월아 네월아, 주야장천 돌려서 그나마 만족스럽게 뽑았던 오타루와 소노자키 얼굴을 한 만쥬, 축제 때 받았던 칭찬 엽서, 학교를 그린 풍경에 자신이 작게 그려져 있는 종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텅 비었던 책상이 점차 무언가로 채워져 있는 건 비단 기분 탓이 아녔을 테다. 손이 가는 대로 먼저 집은 것은 오타루의 얼굴을 한 만쥬. 인상을 찡그린 채 위아래로 쭈욱 잡아당기기를 반복하고 마구 괴롭히면서 철없는 아이 마냥 중얼거렸다.

" 연락하라고 자기 입으로 말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가버리냐! 말하고 가면 덧나냐고, 이 뻔뻔한 자식."

뻔뻔하기 그지없는 제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말 안 하고 먼저 간 녀석이 잘못한 거다. 그러나 혼자 온갖 변명을 덧붙이며 탓해봐도 이 고래섬에서 오타루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여전히 미간을 팍 구긴 모습 그대로 옆에 있는 소노자키의 얼굴을 한 만쥬도 쭈욱 늘리고 있으면 나중에 누가 부자가 되어있을지 내기했던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나, 카츠키 료가 마냥 손가락을 빨며 지는 건 상상도 안 되잖냐. 질 수 없다는 둥……. 꼭 내기에 이겨서 제가 대신 돈다발 뿌리며 떵떵거리고 살아야지, 하고 덩그러니 방에서 크게 외치곤 비어있는 한 손으로 주먹을 꾸욱 쥐어 보이고! 한 번 더 만쥬들을 꼬집고는 내려놓는다. 이크, 먼지 쌓이면 안 되지, 음……. 먼지도 탁탁, 털어줬고.

그러다 가만히 놓여있는 엽서에 흘긋, 시선을 두었다. 축제에서 오즈한테 받은 것이었다. 엽서를 들고 빤히… 역시 이 녀석 그림 끝내주게 못 그리잖냐, 하고 불평을 곧장 내뱉었고 요리조리 엽서를 휙휙 돌려가며 다시 응시했으나 결론은 똑같았지. 얼마나 잘 그려주나 손톱만큼 기대했더니 오즈의 얼굴을 그려놓은 엽서를 네게 주자마자, 제 얼굴을 그려준 엽서를 테이블 위에 슥, 덮은 채 올려두고서 저 멀리 가버리는 네 뒷모습을 봤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게다가 밑에 적힌 칭찬을 보고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 네가 사라진 탓에 두고두고 놀리지도 못해 아쉬운 듯 혀만 찼던 것이 떠올랐다.

또 다른 종이도 주워 들어 살펴보면 익숙한 학교 앞에 조그맣게 그려진 제 모습이 있는 풍경화였다. 이건, 코바야시 녀석이랑 학교 앞에 가서 그렸던 거였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한참 동안 제 모습을 구경했다... 내가 이렇게 험상궂게 생겼던가?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역시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녀석이 아니랄까봐, 나름 제 특징을 잘 살리며 그려놓은 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저도 널 열심히 그린다고 그렸지만 누가 보면 너 같으면서도 너 같지 않은 그림을 네가 좋아하며 가져갔다는 게 살짝 민망한 기분이 되었고. 어쨌거나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게다가 나중에 만났을 때 다시 맞춰보자고 너와 약속까지 했으니,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장에서 쓰지 않는 투명한 새 클리어 파일을 꺼내 엽서와 함께 끼워놓았다.

방 정리를 한다는 게 그만 농땡이를 피운 격이 되었다. 뭐, 이런 시간도 괜찮지 않나... 중얼거리며 볼을 긁적이곤 너저분한 방을 다시 치우기 시작했다. 이따 밤에는 바다나 놀러 가야지, 혼잣말을 늘어놓기도 했고.

적막을 깨트리듯 철썩대며 모래 위로 부딪혀오는 파도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수많은 거품들 사이로 힐끗 보이는 익숙한 모래알. 밀려오는 파도 속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며 뛰어드는 게. 고래섬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봐왔던 이 바다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겠지.

평소였다면 같이 어울려달라면서 누구든 끌고 와서는 제 운동화를 아무 곳에나 벗어던지고 뛰어다녔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그러한 낌새 하나 없이 졸업식 때 우리가 가져왔던 꽃을 흩뿌린 절벽에 선 채로 저 밑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끝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를 게 있다면, 바다에 처음 걸음을 내디뎠을 때부터 지금까지 해변가에서 주워 모아놓았던 조개와 소라 껍데기, 불가사리 등..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바구니를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이다.

……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무언가를 결심한 것 같이 손에 쥐고 있던 바구니를 바닥에 탁, 소리를 내면서 내려놓곤 제 두 손 가득히 조개껍데기들을 한 움큼 쥐더니 대뜸 절벽의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다가가서는 저 밑에 있을 바다 위로 내던지듯 흩뿌렸다.

‘플라워 샤워’ 라고 야마나시가 말했던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이런 식으로 꽃을 뿌려준다고. 어제 우리만의 졸업식에서도 분명 이렇게 했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제 손에 가득했던 조개껍데기들이 힘없이 모래와 부딪히며 파도에 삼켜지는 것을 보면서도 어린아이가 부모님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듯 바구니에 있는 조개껍데기들을 반복해서 던지고 또 던지고… 그러다 보면 빼곡했던 바구니가 물 빠진 거품처럼 점점 끝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즈음, 료는 천천히 몸을 숙이고는 무릎을 끌어안으며 주저앉았다.

절벽 끝에 혼자 주저앉아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코끝이 조금씩 시큰해져 온다.

이건 소금기를 머금고 있는 바닷바람이 제게 불어온 탓이다.

마치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땅바닥이 두어 번 물방울로 적셔졌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앉아있는 절벽 밑에서 파도가 요란하게 부딪쳐온 탓이다.

항상 당당하게 들고 다녔던 고개가 천천히 밑으로 떨어졌다. 이건…….

새까만 바다와 새까만 하늘의 경계선에 걸려있는 달이 눈부신 탓이다.

유일했던 나의 벗, 바다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건 이 장소가 너무 넓고 조용한 탓이다.

줄곧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모래시계를 꺼내 들어 달빛에 비추어보니 드는 생각은, 모두 시간이라는 존재의 탓이다.

2011.8.16. 잘 있어라, 내 오래된 친구. 바다, 고래섬 그리고 너희들도.